심사위원장 : 강동석 (한국)

탁월한 예술성과 투철한 음악가 정신, 그리고 대가적 기교로 온갖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강동석은 전 세계에 걸쳐 열렬한 환호 속에 연주활동을 해오고 있다. 8세에 첫 연주회를 가져 ‘신동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며 일찍부터 재능을 드러냈던 그는 12살 때 동아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고, 1967년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를 거쳐 커티스 음악원에서 이반 갈라미언을 사사했다. 1971년 17세의 나이로 미국 음악계가 가장 주목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재단 콩쿠르와 워싱턴의 메리웨더 포스트 콩쿠르에서 연달아 우승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으며, 카네기 센터에서의 데뷔 연주회와 세이지 오자와와의 협연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세계적인 연주자로서 확고한 기반을 다져나갔다. 그 후 세계3대 바이올린 콩쿠르인 몬트리올 콩쿠르, 런던 칼 플레쉬 콩쿠르, 브뤼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차례로 석권하며 그의 명성을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에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세계의 저명한 오케스트라들과 함께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필라델피아, 클리블랜드,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몬트리올 오케스트라와 유럽의 로열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닉, BBC 오케스트라, 뮌헨 필하모닉,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닉, 게반트 하우스,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라디오, 폴란드 국립 오케스트라 등 수많은 오케스트라들과의 협연을 비롯해 뒤트와, 오자와, 마주르, 제르비, 메누힌, 잘로넨, 슬라트킨, 정명훈, 바르샤이, 잰슨스, 포스터, 노링턴, 스베틀라노프, 베르그룬트, 라자레프와 헤르비히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함께 공연하며 섬세하고 이지적인 연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아시아 순회연주에서는 NHK, 요미우리, 도쿄 메트로폴리탄, 홍콩, 싱가포르, KBS 그리고 서울시향과 협연하였다. 특히 서울시향과 함께 미국과 유럽에서 순회연주를 가지기도 했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역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방송 협회의 여섯 개 오케스트라 모두와 협연했고, 런던 프롬즈를 비롯한 그의 콘서트들은 많은 나라에서 TV와 라디오로 자주 방송되었다. 실내악에도 강한 관심을 가져 스폴레토, 산타페, 쿠모, 시애틀, 벤쿠버, 뉴포트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실내악 축제들을 위시한 다양한 실내악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또 링컨센터 실내악 협회의 게스트 아티스트로 뉴욕에서의 연주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을 순회 공연했다. 1981년에는 롱티보 국제콩쿠르의 최연소 심사위원으로 위촉 받은 바 있으며, 영국과 벨기에 왕실 초청 연주를 비롯해 백악관에서 레이건 부처가 마련하는 음악회에 초청되어 백악관 연주를 갖기도 하였다.
강동석의 폭넓은 레퍼토리에는 표준적인 작품들뿐 아니라 대다수 연주가들이 도외시하는 작품들 또한 많이 포함되어 있다. 1995년 윤이상의 협주곡 1번을 초연하여 찬사를 받았고, 1997년에는 <세계 음악제> 개막 연주회에서 윤이상의 협주곡 3번을 아시아 초연하여 다시금 그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최근 영국에서 BBC가 위촉한 앨런 호디노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미스트랄’을 역시 초연하면서 새로운 곡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녹음분야에서도 그는 잘 알려진 작품들뿐 아니라 닐슨과 엘가의 협주곡, 오네거와 아클란의 실내악 전곡 그리고 푸르트 뱅글러의 소나타를 녹음하였다. 그의 앨범들은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여러 상을 수상하였다. 아카데미 샤를르크로부터 수상한 그랑프리와 누벨르 아카데미 디 디스크로부터 받은 그랑프리 등이 그것이다.
세계음악사전 그로브 음악사전, 영국의 ‘세계 음악 인명사전’, 프랑스의 ‘연주가 사전’에 그의 이름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떨친 강동석은 끊임없이 탐구하고 도전하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빈틈없는 기교, 완벽한 활놀림으로 영혼을 감화시키며, 그의 위상과 명성은 이미 비르투오조의 반열에 우뚝 서있다.
2000년부터 대한간학회와 세계적 제약회사 GSK로부터 만성 B형 간염퇴치 명예대사로 위촉되어 올해로 8년째 희망콘서트를 진행해 오고 있으며, 프랑스 쿠세빌에서 열리는 뮤직알프 여름음악캠프의 예술감독을 역임하고 있다. 2000년부터는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6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김남윤 (한국)

한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은 학구적이고 내실있는 해석과 체험이 깃든 신선한 연주로 국내 음악계의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리카르도샤이가 지휘하는 영국 로열 필하모닉, 알렉산더 드미트리에프가 지휘하는 성페테르부르크 심포니, 헝가리 브르노 국립교향악단, 자그레브 방송교향악단, 싱가포르 교향악단, 상해 교향악단, KBS 교향악단, 서울시향 등 국내외 정상급 교향악단과 다수의 협연으로 뛰어난 음악성과 탁월한 연주력을 인정받았으며, 뉴욕 카네기홀, 링컨센터의 알리스툴리홀, 워싱턴 케네디센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동경 야마하홀 등에서의 독주회로 세계무대에서 청중과 비평가들에게 격찬을 받았다. 툴루즈 챔버, 자그레브 챔버 오케스트라와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전곡을 CD로 출반하였으며, 1996년에는 첼리스트 레슬리 파나스와 듀오 CD를 출반하여 호평을 받았다. 김남윤은 광복 30주년 음악회에 초청된 것을 계기로 대한민국 음악제,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 음악제,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 음악제, 호암아트홀 개관기념 음악제, KBS홀 개관기념 음악제, LG아트센터 개관기념 음악제, 광복 50주년 기념음악회,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실내악축제 등 국내 주요 음악축제에 초청연주를 하였다. 한편, 연주자로서 뿐 아니라 세계적인 국제콩쿠르의 심사위원 및 국제 뮤직페스티벌의 초빙교수로 활약하고 있으며 사라사테(스페인), 차이콥스키(러시아), 시벨리우스(핀란드), 퀸 엘리자베스(벨기에), 파가니니(이탈리아), 쾰른(독일), 하노버(독일), 티보바가(스위스), 대만, 싱가폴, 도쿄, 동아(한국) 등 수많은 국제콩쿠르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하였다.
김남윤의 주목할 만한 연주활동으로는 1998년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연주회'(5회), 1999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연주회'(3회), 2000년 ‘로맨틱 소나타 연주회'(4회)를 통하여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탁월한 바이올리니스트로 다시 한번 큰 호평을 받았다.
서울예고 졸업 후 도미하여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하였으며, 국내에서는 이화?경향 음악콩쿠르 특상, 동아음악콩쿠르 1위를 수상하였고, 미국 유학시절에는 줄리아드 음악원의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비롯하여 워싱턴 메리웨더 포스트 콩쿠르, 허드슨 밸리 영아티스트 콩쿠르, 로스앤젤레스 영 뮤지션스 재단 콩쿠르에 입상하였고 스위스 티보바가 국제콩쿠르에서 1등을 수상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널리 인정받았다.
주요 수상경력으로는 옥관문화훈장(1995), 예음상(연주부문 : 1993), 한국음악평론가상(1989), 채동선 음악상(1987), 음악동아 올해의 음악상(1985), 월간음악상(1985), 난파음악상(1980), 한국음악팬클럽상(1977, 1979) 등이 있다.
서울대 음대교수를 역임하였고 1993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로서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코리안 솔로이스츠 리더, 서울챔버오케스트라 악장으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김영욱 (한국)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은 음악계를 이끌어가는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올해로 40년 이상의 국제적인 음악인으로서의 경력을 경축한다. 그는 세계의 관중들을 솔리스트, 리사이틀리스트, 실내악 연주가로서 사로잡는다. 그의 연주를 통해 그는”기품있는”, “열정적인”, “대가적인” 단어들의 평을 평론가들에게 받는다. 뉴욕 타임즈는 그의 연주를 통해서 “김영욱은 그의 협주곡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마쳤다. 누가 그의 정교하고 세련된 음색과 정격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며 격찬했다.
김영욱은 미국전역, 유럽, 일본 등에서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하고있다. 그는 미국의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세인트 루이스 심포니, 피츠버그 오케스트라 등 미국의 모든 정상급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으며, 여름에는 탱글우드 페스티벌, 시카고 심포니 상주 라비니아 페스티벌, 뉴욕의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 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상주 블라섬 페스티벌에 초청 연주가로 참여한다. 유럽에서는 베를린 필하모닉, 비엔나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닉, 로열 필하모닉,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NDR, WDR,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탁월한 실력의 오케스트라들과 연주하였다. 또한 유럽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에딘보로 페스티벌, 런던 프로스, 루선 페스티벌, 런던의 사우스 뱅크 페스티벌에서 연주하였다. 그는 지휘자 카라얀, 번스타인, 오만디, 스토코프스키, 오자와, 래틀, 하이팅크, 에센바흐, 프레빈, 살로넨, 잰슨, 뫼스트, 터미르카노프와 호흡을 맞췄다. 그는 또한 엑스-김-마 삼중주단의 멤버로서 실내악 음악에 깊이 관여하고있다. 그는 보자르 삼중주단의 멤버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활동했다. 실내악 연주를 함께 한 연주가로는 루돌프 절킨, 쉬프, 요요마, 엠마뉴엘 액스, 피터 절킨, 아이작 스턴, 앙드레 프레빈, 크리스토퍼 에센바흐 등이 있다. 김영욱은 그의 리사이틀과 매년 오케스트라와의 정기 공연 스케줄 외에 특별한 프로젝트에 깊이 헌신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하나로 그는 건터 쉴러의 바이올린 협주곡, 앙드레 프레빈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토비아스 피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한스포크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초연으로 연주했으며, 이 곡들은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을 위해 작곡되었으며, 작곡가들과 김영욱이 협력하여 작곡되었다. 또 하나의 프로젝트로 그는 피터 절킨과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뉴욕에서 연주, 그 후 20개 이상의 도시에서 소나타의 단곡을 연주했다.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연주의 성공은 김영욱과 절킨에게 베토벤 소나타 전집을 연주하도록 영감을 주었으며, 미국 전국 18개 도시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성공적으로 연주하도록 격려했다. 그는 또한 모차르트의 전 소나타를 크리스토퍼 에센바흐와 뉴욕, 도쿄, 런던에서 연주하였다. 그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전곡을 크리스토퍼 에센바흐의 지휘로 런던 필하모닉과 포니 캐년 음반사로 녹음하였으며, 드보르작 피아노 삼중주 작품들을 자신이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중인 엑스-김-마 와 소니 음반사로 녹음하였고, 슈만과 모차르트의 피아노 4중주 전곡을 앙드레 프레빈과 BMG로 녹음하였다. 그는 또한 도이치그라마폰 음반사와 데뷔 음반으로 바하의 파르티타 b단조,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Eb 장조와 멘델스죤, 부르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밤베르크 심포니와 녹음하였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그후 미국으로 건너가 필라델피아에 있는 커티스 음악원에서 전설적인 거장 이반 갈라미안에게 사사했다. 그는 전 세계 각지의 연주들을 통해서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로부터 “바이올린의 경이로움 중 하나”라는 평을 받았으며 그 명성을 갖게 되었다. 현재, 서울대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 예술의전당의 예술감독도 겸하고 있다.

로드니 프렌드 (영국)

영국 출신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로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로드니 프렌드는 솔리스트, 실내악 연주자, 오케스트라 악장, 음악감독, 교수라는 이름으로 세계무대에 지난 45년간 등장했다. 그는 영국의 할레 오케스트라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로 런던 무대에 데뷔했으며, 뉴욕필하모닉과 브리튼 협주곡을 연주함으로 미국무대에 데뷔하였다. 그는 유럽, 북남미, 북유럽, 극동의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로 세계 최정상급 지휘자 하이팅크, 바비롤리, 메타, 라인스도르프, 솔티, 줄리니, 데이비스, 볼트와 호흡을 맞췄다. 그의 많은 음반들 중 런던필하모닉과 연주한 브리튼 협주곡과 바하 협주곡을 EMI로 녹음한 음반은 최고의 절찬을 받는 음반이다.
1991년 프렌드는 솔로몬 트리오를 결성하여 광범위하게 유럽연주를 함께,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등에서 연주하며, 칼톤 레코드와 훌륭한 트리오 작품들을 녹음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악장으로서의 경험과 명성이 전설적이다. 1964년 런던필하모닉의 최연소 악장으로 임명 받고 지휘자 버나드 하이팅크, 바렌보임, 솔티, 줄리니와 함께 일하였다. 1975년 그는 영국인으로는 특이하게 미국 최고의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으로부터 악장으로 발탁되는 영예를 앉았다. 그는 뉴욕필과 함께 세계각국으로 지휘자 번스타인, 불레즈, 메타와 순회공연을 했으며, 그가 악장으로 일했던 최 정상급의 두 오케스트라 런던필하모닉, 뉴욕필하모닉과 오케스트라 레파토리의 거의 전부를 음반으로 녹음하였다. 그는 귀국 후 로제스트벤스키를 지휘자로 BBC 교향악단의 악장으로 역임하였으며, 영국 왕립 음악대학의 수석강사, 바이올린 고문으로 역임했다. 또한 영국 왕립 음악대학에서 RCM 현악 앙상블을 결성했으며 감독하여 뛰어난 음악가들과 정기공연을 추진시켰다. 프렌드는 1990년부터 교습, 솔로와 실내악 연주에만 집중하며 교수로서, 세계국제바이올린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정기적으로 세계를 순회한다.
2006년에는 그의 책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첫 2권을 부지 앤 혹스 출판사 제작으로 출판하였고, 그 책으로 전세계로부터 “이 분야의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는 갈채를 받았다. 그는 1696년도에 제작된 요세프 과르네리로 연주한다.

시미즈 다카시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시미즈 다카시는 일본 요코스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6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했으며, 3년뒤에 전일본학생바이올린콩쿠르에서 우승하였고, 같은 해에 NHK교향악단과 함께 히타치 왕자의 결혼식 축하연주로 텔레비전에 데뷔하였다. 그는 17세 때 일본의 3개 콩쿠르를 석권한 후 주목 받게 되었다. 그 해 그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최고점을 얻은 장학생으로 야사 하이페츠의 문하생이 되었다. 이후 미쉘 오클레르, 이프라 니만도 사사한 다카시는 자크 티보, 칼 플레쉬(베토벤 소나타 상도 수상), 그라나다, 퀸 엘리자베스 등 다수의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한 후 아르헤리치, 메뉴인, 포우청, 기틀리스, 마이스키, 기렐로프 등과 실내악 연주를 했으며, 마르타 아르헤리치, 미샤 마이스키와 피아노 3중주 연주를 하였다.
다카시의 음반 중 런던 심포니와 협연한 브람스, 생상스, 비에니아프스키 협주곡과 바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전곡 연주, 파가니니 24 카프리스, 프로코피예프의 2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이자이의 솔로 소나타 등이 유명하다. 다카시는 현재 도쿄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에두아르트 그라치 (러시아)

러시안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트 그라치는 모스크바 국립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이자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 교수로 알려져 있다. 그는 러시아에서 ‘러시아인의 예술가’라는 호칭을 갖고 있다. 그는 세계의 주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으며, 러시아 바이올린 학교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아브람 얌폴스키를 사사,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했다. 60여 년간 국제, 국내에서 활발하게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라치는 작품의 초연 연주 외 그를 위해 특별히 작곡된 곡들을 포함 거의 700개의 바이올린 곡을 레파토리로 가지고 있다. 그는 쿠르트 마주어,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 키릴 콘드라신, 게나디 로제스트벤스키, 쿠르트 잔덜링 등의 지휘자와 연주를 하였다.
그는 자신의 음반을 100여 개 가지고 있으며, 연주, 녹음뿐만 아니라, 모스크바 음악원 관현악부 학장으로서 제자양육에도 깊게 기여하고 있다. 그라치는 1995, 2002, 2003년에 ‘뮤직 리뷰’지 에서 선정한 ‘러시아 최고의 교수’이기도 하였다. 그는 1996년에 얌폴스키 국제바이올린콩쿠르를 창설하였고, 1996, 1999년, 2002년, 2006년에 음악감독을 역임하였다.
또한 그는 독일, 미국,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헝가리, 중국, 한국대만 등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가졌다. 지휘자로서도 활동하는 그라치는 모스크바 주 챔버 오케스트라의 창시자이며, 국가에서 주는 공로훈장 등 많은 명예로운 직위를 획득했다.

울프 휠셔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울프 휠셔는 7살에 그의 아버지 퍼디낸드 휠셔로부터 처음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10살에는 브루노 마수랏에게 사사를 받고, 쾰른에서 막스 로스탈, 그 후 미국에서 3년간 인디애나 대학에서 요제프 긴골드를 사사했다. 또한 미국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에서 폴 마카노비츠키와 이반 갈라미안을 사사했다. 그는 유럽으로 돌아온 후 그의 세대를 이끄는 음악가인의 한 사람으로 명성을 갖게 되었다. 휠셔는 런던, 뮌헨, 도쿄, 함부르크, 파리, 시드니, 베를린 등의 도시의 훌륭한 연주홀에서 연주를 가졌으며, 유럽, 러시아, 극동, 독일(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뮌헨 필하모니 관현악단, 할레 오케스트라와 협연), 일본, 호주 등으로 순회연주를 하였다. 그의 광범위한 레파토리의 음반들로는 EMI 레이블 까미유 생상스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 전곡을 런던의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피에르 데르보의 지휘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을 첼리스트 하인리히 쉬프와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차하리아스 연주와 쿠트르 마주어의 지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반주로, 브람스, 코른골트, 오트마르 쇠크의 곡을 영국 실내 관현악단과 하워드 그리피스 지휘로, 슈트라우스, 차이콥스키, 베르크, 슈포어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전곡을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녹음했다. 그는 지금까지 발매된 협주곡 음반들과 이중 협주곡,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소품곡들의 음반들은 2001년 음반의 출시와 더불어 그의 거대한 계획을 완성 시켰다. 그가 출시한 음반으로는 에르마노 볼프페라리, 지크프리트 바그너, 벤저민 프랭클의 협주곡을 포함한다. 그는 거장의 작곡가들의 협주곡 레파토리에 강고하게 헌신하고 있으며, 현대음악의 대가로서 휠셔를 위해 작곡된 폴커 다비드 키르히너 바이올린 협주곡을 초연으로 1984년 베를린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으며, 1987년에는 프란츠 훔멜이 휠셔를 위해 작곡해준 협주곡을 바덴바덴에서 연주 및 텔레비젼에서 중계되었고, 1988년에는 훔멜 협주곡의 첫 라이브 공연을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가졌으며, 1989년에는 아리베르트 라이만의 첼로와 바이올린을 위한 이중주 협주곡을 첼리스트 볼프강 뵈처와 하노버에서 연주를 시작으로 암스테르담, 뉴욕, 툴루즈 그리고 취리히에서 순회연주를 하였으며, 1991년도에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연주하였다.
그는 1993년 앨런 페터슨의 협주곡을 멘델링 현악 4중주단과 CPO 레이블로 녹음했다. 울프 휠셔는 또한 실내악에 헌신하고 있으며, 갈리나 비슈네프스키야와 쇼스타코비치의 실내악 작품들을 녹음했으며 슈만의 소나타, 바르톡, 세자르 프랑크, 시마노프스키의 작품들을 미셀 베로프의 피아노와 함께, 슈베르트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전곡을 칼 엥겔의 피아노 반주로 녹음하였다. 그는 또한 브람스의 피아노 3중주 b 단조를 첼리스트 하인리히 쉬프,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차하리아스와 녹음하였다. 그는 첼리스트 볼프강 뵈처와 20년 이상을 이중주로 호흡을 맞췄으며, 브람스의 첼로와 바이올린을 위한 이중주 협주곡을 비롯해 블로흐, 라벨, 아이슬러등의 작곡가들의 이중주곡을 네빌 매리너경의 지휘로 녹음했다. 울프 휠셔는 그의 앙상블 그룹 “앙상블 울프 휠셔” 와 오랜 시간 분실되었던 막스 브루흐의 8중주 곡을 녹음하였으며, 그 음반은 최근에 출시되었다. 그는 젊은 영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이안 파운틴, 바이올리니스트 울프 발린과 함께 콘서트, CD제작을 준비 중이며, 아르헨티나 피아니스트 카르멘 피아치니와 연주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

제임스 버스웰 (미국)

독주자, 협연자, 실내악 연주자, 지휘자, 교육자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버스웰은 오늘날 가장 다재 다능한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서 미국과 캐나다의 모든 정상급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호주, 남미의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해왔다. 그는 또한 레너드 번스타인, 피에르 불레즈, 에리히 라인스도르프, 주빈 메타, 세이지 오자와, 앙드레 프레빈, 조지 셀, 마이클 틸슨 토마스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함께 연주하였다. 그는 리사이틀에서의 대담한 레파토리 선정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일반적인 명곡과 함께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로 구성한다. 그는 잘 알려진 레파토리 만큼 신곡을 자주 연주하고, 도날드 얼브, 찰스 우리넨, 지안 카를로 메노티, 네드 로렘, 레온 커크너, 존 하비슨, 군터 쉴러, 윌리엄 볼컴, 엘렌 타페 츠빌리히, 에후디 와이너의 작품들을 세계 초연했다. 그의 최근 출시된 음반으로는 낙소스 레이블의 피스톤과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있으며, 그 음반은 2003년 그래미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는 링컨센터의 챔버뮤직소사이어티와 바흐 아리아 그룹의 연주자로 활동 중이며, 많은 실내악단과 함께 객원 솔리스트로 연주하고 있다. 그는 연주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시에 하버드 대학에서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와 조각과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현재 뉴잉글랜드 컨서버토리에서 바이올린교수로 재직 중이며 첼리스트인 부인과 보스턴에 살고 있다. 그의 “섬세하고 무엇인가를 연상시키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연주” 에 대한 호평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콘스탄티 쿨카 (폴란드)

바이올리니스트 콘스탄티 쿨카는 1947년 3월 5일 폴란드 그다니스크에서 태어났으며 스테판 허먼 교수를 사사했다. 1964년 그는 이탈리아 제노아 에서 열린 니콜로 파가니니 국제콩쿠르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1966년 뮌헨 ARD 국제음악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으며, 이후 국제적인 음악가로서의 이력을 갖게 되었다. 그는 1967년 이후 세계 각국에서 2000번 이상의 협주곡 연주, 리사이틀을 가졌다.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미네아폴리스, 런던 심포니,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잉글리시 챔버 등과 협연했으며 루체른, 보르도, 베를린, 브라이튼, 프라하, 바르셀로나, 플랑드르, 바르샤바 등 수많은 페스티벌에서 연주를 했다. 그의 음반은 비발디, 모차르트, 멘델스죤, 글라주노프, 랄로, 바르토크, 프로코피예프, 베토벤, 브람스, 카를로비츠, 펜데레츠키, 힌데미트, 시마노프스키 등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폴란드의 현대음악들(펜데레츠키, 루토슬라브스키, 나픽, 블로흐, 야블론스키 등) 그리고 실내악 곡 등을 포함한다. 이 중 2개의 시마노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1981년 파리에서 음반대상을 받았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스턴의 다음으로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첫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유럽과 북미에서 자주 연주하는 연주자이다. 1984년 이후 그는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교향악단의 솔리스트로 전 세계를 순회하며 연주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는 1994년부터 폴란드 바르샤바의 쇼팽 음악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폴란드 문화부 장관상, 외무장관상 및 Commander Cross of the order of Polonia Restituta 등 많은 상을 받았다.

피에르 아무아얄 (프랑스)

피에르 아무아얄은 그의 동시대를 이끄는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명으로 12살에 파리 음악원에 수석입학하였다. 그 후 5년간 로스앤젤레스에서 야사 하이페츠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며, 아무아얄은 오랜시간 하이페츠가 개인지도를 준 유일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파리로 돌아온 후 그는 바로 게오르그 솔티경의 지휘로 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파리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고 그 성공적인 연주로 그는 세계 정상급의 오케스트라와 세계 거장 지휘자들과 정기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국제적인 이력을 획득했다. 그의 폭넓은 레파토리는 바하에서부터 베르크, 쇤베르크까지 최근에는 뒤티에 협주곡도 추가되어 카라얀, 오자와, 마젤, 솔티, 프레트르, 프뤼베크 데 부르고스, 로제스트벤스키, 잔덜링, 뒤투아, 불레즈등의 지휘자들과 전세계에서 성공적인 연주를 마쳤다. 그는 카라얀의 지휘와 베를린 필하모닉과 연주함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 로린 마젤과 뒤티에 협주곡을 독일 초연 연주함을 비롯하여 많은 연주를 베를린 필하모닉과 하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의 일류 오케스트라들과 해마다 객원연주가로 출연하며 이태리,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 북유럽, 스위스, 일본, 극동지역 등에서 연주가로 등장한다. 그는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서 보스톤 심포니, 디트로이트 심포니, 클리블랜드, 피츠버그, 볼티모어 심포니와의 연주로 주목할만한 뛰어난 성공을 거두었다. 1985년 3월 아무아얄은 미국 카네기 홀에서 그의 리사이틀 데뷔 연주를 하였으며, 그는 그 연주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의 2005-2006년의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는 벨기에, 밀라노, 비센차,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 잘츠부르크, 멕시코, 리스본, 몽페리에, 페르피냥, 더블린등에서의 성공적인 연주였다. 또한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 홀랜드 뮤직 세션, 로잔의 아카데미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했으며, 2006년도엔 시벨리우스 국제콩쿠르와 인디애나 바이올린국제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초청되었다.
그의 다수의 앨범으론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파스칼 로제의 피아노 반주로, 쇼송 협주곡과 프랑크 소나타, 뒤티에 협주곡(작곡가 뒤티에가 연주를 참관했다), 생상 협주곡 3번, 레스피기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레고리아노”를 파리 국립 오케스트라와 샤를르 뒤트와위 지휘로 녹음했다. 아무아얄의 최근의 음반으론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로 녹음한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 전곡을 피아니스트 프레드릭 추와 녹음했으며, 3개의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도 프레드릭 추와 녹음하였다. 르네 쾨링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프리드맨 레이어와 녹음하였다. 아무아얄은 젊은 나이에 파리국립음악원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지금은 로잔 음악원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로잔 여름음악아카데미에서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듀엣 곡 레파토리에 정열을 쏟고 있으며, 1991년에는 피아니스트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 2004년부터는 피아니스트 브루노 카니노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는 “로잔 카메라타”를 각국의 14명의 젊은 음악가들과 창설했으며 데뷔연주를 몽펠리에 라디오 프랑스 페스티벌,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페스티벌 오프닝, 프랑스 페이드라 루아르 주의 툴롱 페스티벌과 코레스퐁당스 페스티벌에서 가졌다. 2005-2006년에는 파리 상젤리제 극장,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허바우, 밀라노의 Societa dei concerti에서 연주했다. 2006년 2월에는 아무아얄이 이끄는 “카메라타”가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오페라를 로잔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하였다.
아무아얄은 2002년 the Prix du Rayonnement de la fondation 에서 창작예술상을 수상했다. 아무아얄은 1717년 제작된 코찬스키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한다.

후나이위안 (대만)

바이올리니스트 후나이위안은1985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후부터 국제적 무대에 모습을 나타내며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뉴욕의 에버리 피셔홀과 런던, 파리, 뮌헨, 도쿄, 남미, 북미와 아시아의 도시들의 유명 콘서트 홀에서 연주하였다. 월간BBC는 “대만 바이올리니스트 후 나이위안은 테크닉, 음악성, 지칠 줄 모르는 열정 등을 갖춘 뛰어난 연주자로서 오늘날 현악의 대가의 반열에 당당히 올라섰다.” 라고 격찬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후나이위안은 런던의 로열 필하모닉, 토론토 심포니 오케스트라, 시애틀 심포니, 네덜란드 필하모닉, 로테르담 필하모닉, 리에지 필하모닉, 프랑스 릴 국립 오케스트라, 하이파 심포니, 오스트로 헝가리안 하이든 실내악단, 도쿄 필하모닉,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대만 국립교향악단, 타이베이 시립교향악단, 홍콩 필하모닉 등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 또한,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와 함께 독일의 뮌헨, 하노버, 도르트문트를 순회연주 하였다. 그는 조지 클레브, 아담 피셔, 레온플레셔, 건터 허비크, 엠마뉴엘 크리빈, 자하 링, 얀 버나드 포미어, 제라드 슈바르츠, 맥심 쇼스타코비치 등 세계 정상급의 지휘자들과 함께 연주했다. 후나이위안은 뉴욕의 앨리스 툴리홀과 카네기 와일 리사이틀홀, 파리의 시테 드 라 무지크, 런던의 퍼셀룸, 도쿄의 카잘스홀에서 리사이틀을 가졌으며 1990년 보스턴의 조던홀에선 브라이트 생의 “The Stream flows” 라는 곡을 초연했다. 또한 로스앤젤레스, 워싱턴 DC, 달라스, 몬트리올, 토론토, 브뤼셀, 앤트워프, 로테르담, 헤이그, 스페인의 톨레도, 노르웨이의 버겐, 서울, 홍콩, 베이징, 상하이 등에서 연주하였다. 그는 또한 1987년 대만 국립음악당의 개관식 때 솔리스트로 출연하였다. 그는 여름 시즌엔 객원 솔리스트로나 실내악 연주가로 모스틀리 모차르트, 말보로, 그랜드티턴, 워털루, 시애틀, 뉴포트 페스티벌에 참여한다. 열정적인 실내악 연주가로 후나이위안은 후총, 마르타 아르헤리치, 미샤 마이스키와 1999년 베이징 음악 페스티벌 연주를 함께 성공리에 마쳤으며, 링컨센터의 챔버뮤직 소사이어티의 연주 시리즈, 부르클린의 유람선음악 시리즈에 초청받아 연주하였다. 또한 바이올리니스트 후는 2004년 그의 조국의 실내악 음악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대만 커넥션 뮤직 페스티벌을 창설하였고, 음악감독으로 헌신하고 있다. 2007년에는 대만 커넥션 뮤직 페스티벌의 새로운 부가요인으로 젊은 대만출신의 재능 있는 음악가들로 현악합주단을 창설하였다. 그는 제라드 슈바르츠의 지휘로 골드마크의 협주곡, 부르흐의 협주곡 2번을 시애틀 심포니의 반주, 델로스 음반사로 녹음하였으며, 이 음반으로 세계적인 음반상인 그라마폰의 “평론가의 선정”상을 받았으며 BBC 음악 잡지, 런던의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의 출판물들로 많은 격찬을 받았다. 그는 또한 EMI의 음반사로 낸 그의 솔로 바이올린 앨범 “무반주”로 대만의 골든 멜로디 어워드 에서 최고 클래식 앨범상과 최고 기악 연주자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팽 드 셰클 도시의 소중한 음악들이 담긴 비엔나 리비스트는 2003년에 발매되었다. 그는 또한 코치와 선라이즈 라는 TV 쇼의 음악을 녹음하였다.
후는 2001년 미라맥스 필름사의 로맨틱 코메디 영화 맥 라이언과 휴 잭맨 주연의 “케이트 앤 레오폴드” 에서 지붕 위 바이올리니스트로 출연하였다. 같은 년도에 안무가 린 화이민의 클라우드 게이트 댄스 무용단과 합동하여 공연하는 대만 작곡가 츄 상 후웨이의 5개의 전주곡을 만 명 이상의 관중들 앞에서 야외공연 하였다. 타이완 출신 후나이위안은 5살에 바이올린 공부를 시작했으며 3년 뒤에 대만 국립청소년교향악단의 솔리스트로 데뷔하였다. 그는 1972년에 바이올린 공부를 위해 도미하여 브로더스 얼과 조셉 실버스타인을 사사했다. 인디아나 대학에서는 조셉 깅골드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며 졸업 후 그의 조교로 일했다. 후나이위안은 현재 그의 부인 준 후왕과 미국 뉴욕에 살고 있다.

(가나다 순)
※2009년 4월 작성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