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장 : 양해엽 (한국)

양해엽은 1950년 서울대 음악부를 졸업하고 6.25동란 중 해, 공군 교향악단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근무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걷는다. 그는 55년부터 63년까지 파리와 빈에서 유학하면서 19세기의 거장 요셉 요아힘 악파의 철두철미한 바탕에 20세기 바이올린 교육의 왕자 칼 플레쉬의 예술적 기법을 전수받는 한편 가브리엘 부이용, 롤랑 샤르미, 모리스 라스킨 교수들로부터는 프랑스-벨기에 악파의 체계를 이어받았다. 64년부터 서울대 음대와 이화여대 음대에서 후진양성을 함과 동시에 연주활동을 다시 시작한 그는 60, 70년대에 연주자겸 교수로서 한국의 바이올린 음악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프랑스 뢰이유-말메종 국립음악원에서의 8년 간의 교수생활에서도 그는 큰 발자취를 남겼다. 80년부터 85년까지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양국 문화예술교류와 홍보에 기여한 업적은 르몽드지와 르피가로지에서도 격찬한 바 있다.

김남윤 (한국)

김남윤은 한국에서의 음악수업 후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이반 갈라미안을 사사하였고 스위스 티보 바가 콩쿠르를 비롯하여 유럽과 미국의 유수한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함으로써 국제무대에서 솔로이스트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상하이 교향악단, 싱가포르 교향악단 등 아시아의 주요 오케스트라들과, 유럽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성페테르부르크 교향악단 등과 협연하였다. 카네기홀과 워싱턴의 케네디 센터에서 독주회를 가졌으며 자그레브 챔버오케스트라와 함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전곡을 레코딩하였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마스터클래스를 개설하여 제자 양성에도 헌신하고 있고 대만, 싱가포르, 도쿄, 스위스 지온, 독일 하노버 등의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김 민 (한국)

서울바로크합주단의 리더 김민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인 중 한 사람으로, 독주자, 실내악 주자, 오케스트라 악장, 교육자로 활동하여 우리 음악계에서는 가장 다양한 경력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힌다. 쾰른 실내악단, 국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의 악장을 역임했고 유럽 최고권위의 음악축제,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오케스트라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16년째 참가 중이다. 지난 17년 동안 서울바로크합주단을 이끌고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 동남아 등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한국의 실내악을 지구촌 곳곳에 전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5년 9월에는 일본 센다이 시에서 개최된 제2회 차이코프스키 주니어 국제콩쿠르의 심사를 맡았으며, 97년 가을에는 폴란드에서 열리는 비니아프스키 국제바이올린콩쿠르 심사 부위원장으로 초빙되었다. 현재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프라 니만 (영국)

영국에서 가장 탁월한 바이올리니스트인 이프라 니만은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와 뛰어난 교육자라는 두 영역에서 국제적인 명성과 인정을 받는 음악인이 되었다. 파리와 런던에서 음악수업을 한 후 니만은 런던에서 화려한 데뷔를 하였고 세계 유명 콘서트 무대를 단시일에 정복하였다. 그에게 많은 작품을 써주었던 20세기 작곡가들 작품의 대변자 및 옹호자인 니만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현재 런던 길드홀 음악 연극 학교에서 바이올린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그의 마스터클래스 졸업생들이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다. 니만은 세계 여러 나라 음악원 및 음대에서 객원교수로 활약하고 있으며 유럽, 미국, 극동 아시아에서 정기적인 마스터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그는 거의 모든 세계 주요 바이올린콩쿠르의 심사를 맡고 있다.

실비아 로젠버그 (미국)

로젠버그는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이반 갈라미안을 사사했고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파리에서 스지몬 골드버그와 나디아 불랑제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수년 간 런던에 거주하면서 콘서트 활동 외에도 왕립음악학교와 서레이 대학 강단에 섰다. 그는 시카고 심포니, 내셔널 심포니, 런던 심포니, 로열 필, 스톡홀름 필,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뉴 필하모니아, 베를린 라디오, BBC 오케스트라 등과 같은 주요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하였다. 80년부터 아스펜 페스티벌의 교수를 맡고 있는 그는 이스트맨 음악학교, 피바디 음악원, 인디애나 대학에서 가르쳤다. 현재 맨허튼 음악학교에 적을 두고 있으며 영국 왕립음악학교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연주여행을 하며 그의 연주는 BBC를 통해 자주 방송되고 있다. 최근에는 세인트 매그너스 페스티벌에서 피터 맥스웰 데이비스 경 지휘로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

린 야오지 (중국)

현재 베이징 중앙음악원 바이올린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린 야오지는 중앙음악원을 졸업하였고 모스크바 중앙음악원에서 얀켈레비치를 사사하였다. 1980년부터 그의 제자들은 시벨리우스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메뉴인 콩쿠르, 지노 프란체스카티 콩쿠르, 이탈리아 및 호주의 국제바이올린콩쿠르 등 세계 주요 콩쿠르에 참가, 11차례의 1위 입상을 포함하여 서른세 번의 입상을 기록했다. 이 때부터 린 야오지 교수는 서구의 저명한 바이올린 연주자들로부터 훌륭한 바이올린 교육자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과학적이고도 예술적인 그의 교수법이 ‘린 야오지의 대학강의집’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바이올린 강의 논제가 되고 있다. 그는 권위있는 국제바이올린콩쿠르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미국 한국 홍콩 유럽 등지의 마스터클래스에 초청되기도 한다. 린 교수는 중국의 바이올린 발전에 대한 눈부신 공헌을 인정받아 대상을 받았다. 그는 현재 영국 칼 플레쉬 국제바이올린콩쿠르 국제자문위원이기도 하다.

볼프강 마슈너 (독일)

독일 드레스덴 태생의 마슈너는 4세에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교향악단 부속학교에서 음악공부를 시작한 후 드레스덴 음악아카데미로 옮겨 공부했다. 13세에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학업을 계속하는 한편 그의 첫 순회콘서트에 나섰다. 1954년 쉔베르크 바이올린협주곡 연주로 크라니히쉬타인 음악상을 수상하여 에딘버러, 취리히, 드레스덴, 스톡홀름, 파리, 런던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고 브렌델, 길렌과 레코딩을 하였다. 또한 칼 뵘, 폴 힌데미트, 존 바비롤리 경 등 거장의 지휘로 베를린 필, 런던 필 등과 협연하였다. 마슈너는 여러 실내악단과 교향악단을 지휘했으며, 작곡가로서도 항상 현대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바이올린 콘서트에서조차 다수의 현대 음악 작품을 연주해왔다. 그는 권위있는 여러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을 역임하였고 스포 국제바이올린콩쿠르과 막스 레거 국제실내악콩쿠르의 창설자이자 회장이다.

에드워드 지엔코프스키 (오스트리아/폴란드)

1951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폴란드, 독일 벨기에 등지에서 음악수업을 하였다. 72년부터 79년까지 폴란드 비니아프스키 콩쿠르, 독일 멘델스존-바르톨디 콩쿠르, 이탈리아 파가니니 콩쿠르, 헝가리 바르톡-스지게티 콩쿠르와 같은 다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하였고 79년에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이었으며 82년에는 독일 쾰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악장으로 활약하였다. 84년에는 독일 아아헨 음악아카데미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85년에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제1대 악장을 역임하였다. 90년에는 빈 음악 국립아카데미 교수이자 실내악 앙상블 단원으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제라르 풀레 (프랑스)

제라르 풀레는 지휘자 가스통 풀레의 아들로, 천재소년이었다. 11세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12세에 매우 예외적으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바이올린부 1위에 입상하였다. 18세에 이탈리아 제노바의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했다. 프란체스카티, 메뉴인, 밀스타인 등의 지도와 헨릭 쉐링의 가르침 아래 예술성과 전문성을 깊이 있게 터득하였다. 풀레는 유명 솔로이스트로서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파리 국립음악원 교수이면서 중국, 한국, 일본에서 정기적으로 마스터클래스와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풀레는 프랑스의 여러 오케스트라와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있고 매년 유명 페스티벌 참여와 함께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 미국, 캐나다, 체코슬로바키아 등지에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존경 받는 교육자인 제라르 풀레는 많은 음반을 통해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하라다 고이치로 (일본)

고이치로 하라다는 도쿄 도호 음악학교에서 수학한 후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폴 마카노비츠키, 도로시 딜레이, 이반 갈라미안을 사사했다. 69년에 그는 도쿄 현악사중주단을 창설하여 12년 동안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다. 이 사중주단의 단원으로서 그는 세계 각지를 순회했으며 에딘버러, 루체른, 사우드 뱅크, 탱글우드, 모차르트 페스티벌을 포함한 수많은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또한, 도이치 그라모폰, CBS, 뱅가드 사와의 레코딩으로 스위스 몽루에서 음반대상을 수상하고,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음악지인 스테레오와 그라모폰 지는 2회에 거쳐 그에게 올해의 레코드 상을 주었다. 현재 도호 음악학교에 재직중인 그는 일본 최고의 음악인들로 실내악단을 창설했다. 그는 스폴레토, 핀란드 쿠오모, 로스앤젤레스 실내악 페스티벌과 반프 등과 같은 수많은 페스티벌에서 연주해왔다. 1988년 뉴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데뷔한 이래 그는 지휘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97년 11월 작성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