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장 : 강동석(한국)

8세에 첫 연주회를 가져 ‘신동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며 일찍부터 재능을 드러냈던 강동석은 12세의 나이로 동아음악콩쿠르에서 대상을 받고, 1967년 뉴욕 줄리어드 음악학교를 거쳐 커티스 음악원에서 이반 갈라미언을 사사했다. 1971년 17세의 나이로 미국 음악계가 가장 주목하는 샌프란시스코심포니재단콩쿠르와 워싱턴의 메리웨더포스트콩쿠르에서 연달아 우승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으며, 카네기 홀에서의 데뷔 연주와 세이지 오자와와의 협연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세계적인 연주자로서 확고한 기반을 다져나갔다. 그 후 몬트리올콩쿠르, 런던 칼플레쉬콩쿠르, 브뤼셀 퀸엘리자베스콩쿠르를 차례로 석권하며 그의 명성을 유럽에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의 필라델피아, 클리블랜드,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오케스트라와 유럽의 로열필하모닉, 런던필하모닉, BBC오케스트라, 뮌헨필하모닉, 슈투트가르트필하모닉,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프랑스국립오케스트라 등 수많은 오케스트라들과의 협연을 비롯해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함께 공연하며 관객을 매료시켰다. 1995년 윤이상의 협주곡 1번을 초연하여 찬사를 받았고, 1997년에는 <세계 음악제> 개막 연주회에서 윤이상의 협주곡 3번을 아시아 초연하여 다시금 그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최근 영국에서 BBC가 위촉한 앨런 호디노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미스트랄’을 역시 초연하면서 새로운 곡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의 앨범들은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여러 차례 수상하였다. 아카데미 샤를르크로부터 수상한 그랑프리와 누벨르 아카데미 디 디스크로부터 받은 그랑프리 등이 그것이다. 매년 여름 프랑스 틴느에서 열리는 뮤직알프여름음악캠프의 예술감독을 역임하고 있으며, 2000년부터는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한 2006년부터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예술감독을 맡아 한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축제로 발전시켰다. 대원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제4회 대원음악상에서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와 함께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기사 훈장을 수여받았다.

쉬잔 게스네(프랑스)

쉬잔 게스네는 파리, 스트라스부르, 미국 미시건대학교와 시카고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현재 파리 시립음악원과 고등음악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그는 여러 뛰어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그들 중 다수가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콩쿠르, 포켈스톤의 메뉴인콩쿠르, 마게리트롱티보콩쿠르 등에서 입상했다. 그 외 여러 제자들이 프랑스, 독일, 스페인, 폴란드, 미국 등의 유명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거나 세계 각지의 음악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일리야 그루베르트(네덜란드)

라트비아 리가 태생인 일리야 그루베르트는 다르친스 음악원에서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15세에 바이올린 교육자인 유리 얀켈레비치가 그를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초청하여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드 코간을 사사했으며 1980년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75년 첫 국제무대인 시벨리우스콩쿠르에서 입상한 데 이어 파가니니콩쿠르와 차이콥스키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했다. 이후 그는 형인 피아니스트 나움 그루베르트 등과 연주하며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갔고 모스크바필하모닉, 상트페테르부르크필하모닉, 러시아국립오케스트라, 드레스덴관현악단, 로테르담필하모닉, 헬싱키필하모닉, 레닌그라드필하모닉 등 여러 유명 오케스트라와 연주했다. 마리스 얀손스,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 볼데마르 넬손, 얍 판 츠베덴 등의 저명한 지휘자들과 협연했으며 미국, 캐나다, 호주, 유럽 전역에서 리사이틀을 열었다. 1996년 1월에는 시벨리우스와 브루흐 협주곡 연주로 ‘골든 튜닝 포크’상을 수상했다. 그는 RCA, 낙소스, 찬도스, 채널 클래식스, 온딘 등의 주요 음반사와 시벨리우스, 차이콥스키, 브루흐/파가니니 1, 2번 협주곡,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전곡 등을 녹음했다. 그루베르트는 네덜란드에 거주 중이며 암스테르담 음악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탈리아의 포르투그루아르윈터아카데미와 포르투갈 미뉴대학교의 교수이기도 하다. 그의 학생들은 국내외의 유명 콩쿠르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후쿤(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 교육자인 후쿤은 1980년대 이후 ‘위대한 아티스트(르 몽드)’, ‘의심할 바 없는 파워(더 타임즈)’, ‘그는 서구 공연계에서 놀라운 경력을 쌓아오고 있다(뉴욕타임즈/헤럴드 트리뷴)’, ‘깜짝 등장한 뛰어난 현악기 연주자, 젊은 세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더 스트라드)’ 등의 찬사를 받았다. 그는 아버지 후웨이민 교수, 린야오지 교수에게 바이올린을, 어머니 펭시준 교수에게 피아노를, 수신 교수에게 지휘를 배웠다. 13세에 차이니즈라디오심포니와 협연했으며, 17세 때인 1980년에는 시벨리우스콩쿠르에서 1위로 입상하며 솔리스트로서 국제 무대에서 커리어를 쌓은 중국 본토 출신 첫 바이올리니스트로 기록되었다. 이후 그는 세계를 돌며 공연하는 한편 15년간 예후디 메뉴인을 사사했다. 여러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하고 레코딩 계약을 체결했으며, 세계의 유명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했다. 그는 또한 콜린 데이비스 경으로부터 10년간 지휘를 사사했으며 런던에서 오케스트라 ‘후쿤과 친구들’을 설립했다. 후쿤은 현재 지휘자로 세계를 누비고 있으며, 영국 왕립음악원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한 다수의 마스터클래스 개최와 세계 유명 콩쿠르의 심사위원 역임을 통해 동서양 문화교류의 가교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의 커리어를 다룬 여러 영화와 TV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했다.

올레흐 크리사(미국)

우크라이나 출신으로서 구소련에서 솔리스트 겸 실내악 연주자로 명성을 쌓은 올레흐 크리사는 1971년 미국 카네기 홀에서 데뷔했으며 뉴욕 타임즈는 “명성 없이 섰다면 그 명성을 만들어주었을 정도로 위대한 무대”라고 평했다. 이후 18년간 미국 무대에서의 공백을 깨고 1990년, 카네기 홀과 케네디 센터에 다시 등장해 ‘바이올린의 마스터’로 극찬을 받으며 명성을 다시 확인했다. 그는 다비트 오이스트라흐를 사사하며 비에니아프스키, 차이콥스키, 몬트리올콩쿠르 등 여러 주요 콩쿠르에서 입상하였고 파가니니콩쿠르에서는 1위에 입상했다. 학업을 마친 후에는 키예프 음악원 바이올린 학과장으로 임명되었고 1973년에는 그네신 음악원과 모스크바 교육대학의 바이올린 학과장을 맡았으며, 모스크바 음악원에서는 1988년까지 재직했다. 현재는 뉴욕 이스트만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세계 유명 공연장에서 일류 오케스트라 및 지휘자와 협연했으며 북아메리카, 유럽, 아시아의 주요 음악제에 출연했다. 키예프콘서바토리콰르텟, 레온토비치콰르텟, 베토벤콰르텟 등 다수의 콰르텟을 이끌기도 했던 그는 현대음악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알프레드 슈니트케, 에디슨 데니소프,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크지슈토프 펜데레츠키, 발렌틴 실베스트로프 등 유명 음악가와 긴밀하게 작업했다.

이성주(한국)

이성주는 1976년 영 콘서트 아티스트 오디션에 선발된 후 1977년 뉴욕 카프만 홀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가졌으며 뉴욕타임즈로부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 비에니아프스키콩쿠르(1974년) 우승을 비롯하여 시벨리우스콩쿠르, 워싱턴콩쿠르(1975년), 차이콥스키콩쿠르(1978년), 퀸엘리자베스콩쿠르(1980년), 나움버그콩쿠르(1981년) 등 세계 주요 콩쿠르에서 입상하거나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1984년과 1988년 두 차례에 걸쳐 헨델페스티벌오케스트라 솔리스트로서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프랑스, 서독,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 7개국 순회공연을 통해 국제적인 연주자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혔다. 헝가리 국립교향악단을 비롯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인 세인트루이스심포니, 볼티모어, 시애틀, 체코필하모닉, 무라비안, 홍콩필하모닉, 대만심포니 등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미국을 거점으로 활동했던 이성주는 19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초청으로 귀국해 한국종합예술학교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음악 영재 발굴과 함께 국내외 유명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및 실내악 활동을 활발히 펼쳤으며, 1997년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현악 앙상블 ‘조이오브스트링스’를 창단해 예술감독으로 수많은 기획공연과 초청공연, 정기연주회를 열어 국내 실내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2009년 국내 최초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총10개)을 5시간에 걸쳐 마라톤연주함으로써 열정적인 연주자로서의 면모를 다시 확인시켰다. 1986년에는 데뷔 음반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를 출반했으며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Violin Concertos>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등을 유니버설 뮤직을 비롯한 다수의 레이블로 발매했다. 2017년 4월에는 뉴욕 데뷔 40주년 기념 음반 <BACH VIOLIN CONCERTOS>를 내놓았다.

대니얼 필립스(미국)

바이올리니스트 대니얼 필립스는 실내악 연주자이자 독주자, 교육자로서 다채로운 경력을 자랑한다.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아버지인 유진 필립스와 이반 갈라미언, 샐리 토마스, 나탄 밀스타인, 샨도르 베그, 조지 네이크러그를 사사한 그는 30년 역사를 가진 오라이온 콰르텟의 창립 멤버이며 이 사중주단은 매네스 음악대학에 상주하며 링컨센터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에서 정기 연주회를 갖고 있다. 이 콰르텟은 베토벤과 레온 커치너의 사중주 전곡을 녹음했다. 필립스는 1976년 영콘서트아티스트콩쿠르에서 입상했으며 피츠버그, 보스톤, 휴스턴, 뉴저지, 피닉스, 샌안토니오심포니 등 여러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해왔다. 그는 정기적으로 스플레토음악제, 산타페체임버음악제, 체임버뮤직노스웨스트, 체서피크음악제 등에 출연하고 있으며 영국 콘월에서 열리는 국제 음악가 세미나에 창립 이후 계속 참가해오고 있다. 그는 또한 하이페츠협회와 세인트로렌스스트링콰르텟세미나의 여름음악학교 교수이다. 바흐아리아그룹 소속으로서 콰르텟의 일원으로 투어활동을 하는 한편, 기돈 크레머, 킴 캐시캐시언, 요요마와 소니에서 레코딩 작업을 하였다. 그는 퀸스컬리지에런코플런드 음악대학, 매네스 음악대학, 바드컬리지 컨서바토리, 줄리어드 음악대학의 교수이다.

피호영(한국)

독주회, 협연 무대, 실내악, 오케스트라 활동까지 매년 피호영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특히 2007년 강남역에서 벌인 “길거리 연주”는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최근에는 브람스, 프로코피에프, 모차르트, 베토벤, 포레, 그리그, 슈베르트로 이어지는 소나타 전곡연주회로 누구보다 학구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비르투오죠스트링콰르텟을 창단하였으며 국내외에서 활발한 실내악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오케스트라 사랑도 각별하여 서울대 재학 시절 서울시향 수석으로 입단, 유학 후에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악장으로 10년간 활동했다. 13세에 서울시향과 파가니니 협주곡을 협연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피호영은 서울예고, 서울대 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프랑스 정부 국비장학생으로 도불하여 미셸 오클레를 사사,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을 수석 졸업했다. 스위스 베른 국립음악원에서 이고르 오짐을 사사했으며 스위스 베른심포니와 협연함으로써 유럽 무대에 데뷔하였다. 한국음악협회 이사, 성신여대 음대 학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DMZ국제음악제 조직위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 앙상블 유니송 음악감독, 성신여대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슈테판 피카르트(독일)

슈테판 피카르트는 독일인과 프랑스인 부모 아래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스페인과 독일에서 자랐다. 10살에 독일에서 바이올린을 시작했으며 자슈코 가브릴로프, 슈테판 게오르규, 로만 노델을 사사했다. 바르셀로나 마리아카날스콩쿠르와 독일 국립음악콩쿠르에 입상했고 주요 오케스트라 및 실내악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하며 솔리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유럽, 한국, 일본, 미국, 캐나다, 남미와 뉴질랜드를 돌며 콘서트와 마스터클래스를 개최했으며 그는 1995년부터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악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제자들은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같은 유명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약중이며, 퀸엘리자베스콩쿠르, 제네바국제음악콩쿠르 등 유명 콩쿠르에서 입상하였다.

시미즈 다카시(일본)

시미즈 다카시는 6살 때 도쿠나가 시게루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스미 사부로를 사사했다. 열 살의 나이로 전일본학생바이올린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같은 해에 NHK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연주로 데뷔한 그는 유리 얀켈레비치에게서도 레슨을 받았으며 17세에는 일본의 3개 콩쿠르를 석권했다. 이듬해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서던캘리포니아대학에서 야샤 하이페츠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이후 하이페츠의 조언으로 미셀 오클레르에게서 프랑스 음악과 프랑스 스타일의 보잉을 배웠다. 그 후 런던으로 건너가 이프리 니먼에게서 실내악을 14년간 사사했으며 니먼의 소개로 예후디 메뉴인과 나탄 밀스테인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여러 국제콩쿠르에서 1위 혹은 상위 입상자로 수상하였고 프랑스국제콩쿠르에서는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메뉴인 지휘의 로열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런던 데뷔 콘서트는 여러 비평가들로부터 ‘잊을 수 없는 콘서트’라는 평을 받았다. 그는 런던심포니, 로얄필하모닉오케스트라, BBC필하모닉오케스트라, 본머스심포니, 버밍엄시티심포니, 런던 모차르트플레이어스, 더할레, 스코티시체임버, 얼스터 등 여러 영국 오케스트라와 연주활동을 펼쳤으며 벨기에 브뤼셀필하모닉, 국립벨기에오케스트라, 독일 슈투트가르트필하모닉 등 유럽의 여러 오케스트라들과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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