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새 지휘자와 첫 연주 KBS교향악단 ‘조율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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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_concours2
작성일
2013-10-07 16:5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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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KBS교향악단 제공
요엘 레비와 호흡 맞춘 단원들
새출발 의욕 넘친 무대 선보여
법인화 이후 1년 갈등 컸는지
음향의 전체적 균형은 깨져
신뢰·소통 하모니 필요해 보여
음악은 거울이다. 그 음악을 만들어내는 이들이 처한 현실을 선명하게 비춘다. 지난 2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케이비에스(KBS)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 역시 그랬다. 재단법인화 이후 1년간 파행을 거듭하다가 극적으로 갈등을 봉합하고 신임 음악감독을 영입한 케이비에스교향악단의 음악에는, 그간의 갈등과 파행이 남긴 균열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악장을 비롯한 숙련 단원들의 단단한 자존심과 재기를 향한 염원이 독특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신임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지명된 요엘 레비(63)는 단원들과 무리 없는 호흡을 선보였다. 일부 곡 해석에는 의문을 남겼으나, 아직 그의 역량을 평가할 시점은 아닌 듯하다.
이날 레비와 교향악단은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으로 상쾌하게 출발했다. 현악연주만으로는 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견줘도 밀리지 않았다. 현악부는 주제의 도입에 앞서 두텁고 옹골찬 음향으로 청중의 귀를 집중시켰으며, 곡 전반에 걸쳐 노련한 솜씨로 음악의 흐름을 만들었다. 이어진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은 세명의 협연자가 중심이 되다 보니, 오케스트라는 후경을 채워주는 역할에 그쳤다. 신임 음악감독 선임 뒤 첫번째 연주회에 걸맞은 선곡은 아니었으나, 오래전에 확정된 내용이라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협연자 중 게오르기 그로모프(피아노), 양성원(첼로), 클라라 주미 강(바이올린)은 곳곳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2부에 연주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은 청중의 일반적인 기대와 조금 달랐다. 진행에는 안정감이 있었지만, 차이콥스키 특유의 슬라브적 애수가 소거되고 시종일관 장쾌한 어조가 강조됐다. 2, 3악장에서 서정적인 목관 악기 독주부를 무심히 지나쳐 버릴 때는 의아해지기도 했다. 피날레는 시원하고 깔끔했다.
과연 요엘 레비는 교향악단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이번 연주회를 근거로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인 객원 지휘 연주회와 마찬가지로 리허설 기간이 짧았고, 임기 시작 전이라 아직 그의 개성이나 역량이 크게 반영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내년 1월 취임한 뒤, 레비의 음악적인 판단과 감각이 적극 반영된, 혹은 그가 장기를 발휘하는 레퍼토리들을 들어볼 필요도 있다.
레비는 이번 연주회를 앞두고 “지휘자와 단원들 간의 신뢰가 우선돼야 좋은 음악이 나온다”고 했다. 전임 지휘자와 단원들 간의 불화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그러나 연주가 끝난 뒤 객석에서 느낀 점은 그 못지않게 단원들 서로 간의 신뢰와 소통이 중요하리라는 것이다. 이날 가장 두드러진 취약점은 악기군 간에 음색과 음량 등 세부적 조율이 잘 안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음향의 균형이 깨지고 악기들의 소리가 부드럽게 섞여들지 않았다. 오랜 분쟁 중에 생긴 단원들 간의 감정적인 골이 아직도 음악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음악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지휘자의 몫이지만, 지휘자의 주문을 반영해 세부적인 그림을 완성하고 실제 음향으로 구현하는 것은 100명에 가까운 단원들의 공동 작업이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한겨레 2013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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