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09 문화동네 [5]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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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_concours2
작성일
2009-11-28 15:14
조회
257
아이디어의 힘, 색깔 있는 작은 공연 울림은 컸다.

'의미 있는 아이디어.’음악 전문가들이 올해 클래식 공연의 우열을 가린 기준이다. 지난해 말 시작된 경기침체의 여파로 대형 오케스트라 공연이 잇따라 취소됐다. 개런티 높은 연주자들의 명성에 기댄 공연 대신 참신한 아이디어로 마련된 무대가 관심을 모았다. 의미와 메시지가 분명한 공연, 국내 연주자의 향상된 실력을 확인한 공연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전문가 7명이 뽑은 올해의 음악회를 돌아봤다.

김호정 기자

[1] 백건우와 김태형·김선욱·김준희 (5월 10일 예술의전당)

-음악으로 감동을 주는 공연은 많다. 하지만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의미를 전달하는 무대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후배를 격려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세 명의 젊은이가 한 무대에 오른 모습은 올해 최고의 공연으로 기록될 만하다.

홍승찬(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막 경력을 쌓기 시작한 피아니스트들이 받은 용기가 느껴졌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가 후배와 만난 모습은 청중에게 음악뿐 아니라 인생까지 전달했다. 경험과 사랑이 어우러진 무대였다. 장일범(음악 칼럼니스트)

-백건우는 ‘단순히 지식과 연주 실력만 가르치고 싶지는 않다’며 제자 양성을 미뤄왔다. 그런 그가 20대의 젊은 피아니스트들과 한 자리에 섰다. 음악가로서의 삶, 음악을 대하는 자세 등 모든 것을 실전에서 가르쳐주었다. 흔히 만날 수 없는 공연이었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준다. 김주영(피아니스트)

[2] 국립오페라단 ‘노르마’(6월 25~28일 예술의전당)

국내 성악가들의 발견이라 할 만한 공연이었다. 노련한 김영미(55)의 소리도 좋았지만, 유럽에서 주로 활동해 국내에는 생소했던 소프라노 박현주(34)가 특히 눈부셨다. 그는 그 자체로 여주인공 노르마였다. 전설적인 노르마였던 마리아 칼라스의 영향도 얼핏 보였지만 그보다 여성적이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노르마를 다시 만들어냈다. 무대 위 존재감이 기대 이상이었다. 유형종(음악 칼럼니스트)

[3] 기돈 크레머 되기 (11월 10일 예술의전당)

참신함과 연주 실력에서 단연 돋보였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와 연주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율동을 선보이기도 하고 바흐와 비발디로 분장한 음악가들이 레슬링을 했다. 자칫 흥행을 노린 콘서트로 보일 수도 있지만, 메시지는 준엄했다. 시장경제 논리에 휘둘린 음악계의 방향에 대해 여운을 남겼다. 물론 뛰어난 연주가 없었다면 이 의미의 전달력 또한 세지 못했을 것이다.

최은규(바이올리니스트·음악칼럼니스트)

[4] 세종 솔로이스츠와 길 샤함 (12월 11일 세종문화회관)

미국 줄리아드 음대의 한국계 강효 교수가 창단한 앙상블 세종 솔로이스츠에 대한 국내의 평가는 진면목에 비해 박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내한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과 세종 솔로이스츠는 실내악 앙상블의 진수를 보여줬다. 하이든의 1·4번 바이올린 협주곡과 멘델스존 8중주에서 첼로를 비롯한 개개인 연주자들의 음색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세계 어느 실내악단이 이만큼 할까 싶을 만큼 대단한 연주였다.

용호성(국무총리실 문화체육과장)

[5] 사라장 바이올린 리사이틀 (12월 12~28일 전국 순회)

‘정경화 이후는 사라장의 시대’라는 공식을 확인했다. 신동으로 출발해 무르익은 30대, 그 앞에 죽 뻗은 길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 현재 그는 꽉 차있다. 풍요롭고 윤택한 소리는 온갖 기교를 뛰어넘고 내기 시작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제 조금씩 비워나가기만 한다면 그의 음악세계는 더욱 균형을 맞추게 될 것이다.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

중앙일보 2009년 12월 22일(화)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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