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ATIONAL PIANO] 빛나던 순간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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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_concours2
작성일
2008-11-28 14:1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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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4월 15일부터 27일까지 열린 제4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는 국제음악콩쿠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세계적인 수준과 규모로 국내 콩쿠르의 역사에 화려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 13일 동안의 여정과 수상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수준과 권위를 갖춘 콩쿠르로의 재도약을 꿈꾸며 10여 년 만에 부활(1996년 피아노 부문, 1997년 바이올린 부분, 1998년 외환 위기로 중단, 2007년 성악 부문)해 막이 오른 제4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는, 그 가치에 걸맞은 여러 가지 준비 과정과 면모를 통해 밝은 전망을 제시했다. 먼저 이번 콩쿠르에는 26개국에서 온 145명의 연주자들의 지원했다. 지원자들의 국적이 상당히 확대되었고, 이미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실력을 입증받은 유망주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지원자의 국가별 분포도를 보면 한국이 49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과 미국이 각각 19명, 17명으로 뒤를 이었다. 예심은 지난 1월 3일과 4일 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렸다. 강충모, 신수정, 이경숙, 이대욱, 김용배가 예심의 심사위원으로 신청자의 연주 장면이 녹화된 DVD를 통해 1차 예선에 오를 연주자를 가려냈고, 18개국 55명(기권자를 포함하지 않은 통계)이 첫 번째 관문을 넘었다. 이어지는 라운드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연주자이자 음대 교수 혹은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심사위원단-심사위원장인 신수정을 선두로 안드레아 보나타, 카를 하인츠 케멀링, 하인츠 메디모레크, 도미니크 메를레, 노지마 미노루, 피오트르 팔레치니, 폴 셴리, 쉬 중-이 최고의 연주자를 가려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국제 콩쿠르를 찾아다니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던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에게 이번 콩쿠르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긴 비행시간과 현지 적응 시간에 여력을 투자할 필요 없이 국내에서도 비슷한 또래의 실력자들과 경헙을 벌이고 교류를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서울국제음악콩쿠르의 남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었다.
1차 예선은 4월 15~17일, 2차 예선은 4월 19~21일(24명), 준결선은 4월 23~24일(13명)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렸다. 관객 중에는 예중, 고등학생, 대학 전공생들이 많아 이번 콩쿠르에 쏠린 학생들의 높은 관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최종 6명이 진출한 결선은 4월 26~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지휘자 박은성과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긴장감 넘치게 진행되었다. 결선 진출자들은 테크닉은 기본이고 나이를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 있는 해석과 표현력을 보여주며 객석을 환호로 물들였다. 시상은 마지막 결선 무대가 끝나고 얼마 후에 이어졌고, 1위는 마리야 킴(우크라이나), 2위는 알렉세이 고를라치(우크라이나), 3위는 김태형(한국), 공동 4위는 에릭주버(미국), 임효선(한국), 6위는 마리아나 프레발스카이아(스페인)에게 돌아갔다. 수상자들의 국적과 순위는 흔하게 발생하는 자국 참가자에 대한 특혜가 없었음을 증명했다.
올해의 콩쿠르는 12만 2000달러의 총상금(국내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과 리사이틀, 낙소스와 음반 녹음 등도 포함), 다양한 국적의 지원자 수 등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국내 연주자들의 실력 향상과 연이은 해외 진출에 비례하지 않게 국내에 변변한 국제 콩쿠르가 없었던 점을 생각하면 더없이 좋은 성과였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이번 콩쿠르에 대한 관심도는 여타의 콩쿠르나 이전에 비해 훨씬 높아졌지만, 객석 점유율은 크게 높지 않았다. 또한 결선에서 오케스트라와 연주자 간의 호흡은 자주 어긋나 심사 무대가 아닌 하나의 연주회라는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콩쿠르는 말 그대로 경쟁을 통해 실력의 우위를 가리는 치열한 각축장. 그러나 교류와 경험, 축제의 장으로 선다면 콩쿠르는 일종의 전투적인 의미를 넘어 참가자와 관객 모두에게 특별한 이벤트가 될 수 있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는 2009년에는 바이올린 부문으로, 2010년에는 성악 부문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마리야 킴

"무대 뒤편에서 여러모로 나를 지지해준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내 연주를 듣는 사람들로부터 따뜻함과 호의를 느낄 수 있었어요. 멋진 청중이었고, 그들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연주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세바스토폴 음대를 졸업하고 현재 독일 하노버 국립 음대에 재학 중(7~8개월 후에 공부를 마친다)인 마리야 킴은 콩쿠르가 시작되기 전부터 일찌감치 우승 후보로 점쳐졌다. 2006년 마리아 칼라스 국제 피아노 콩쿠르 2위, 2007년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4위 등 이미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가능성을 입증받았고, 이번 콩쿠르의 라운드가 올라갈 때마다 그의 진가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피아니스트에게 모든 콩쿠르는 수상과 관계없이 전환점이 될 수 있어요. 나를 평가하는 대중과 세계적인 음악가들 앞에서 연주를 하기 때문에 집중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내가 갖고 있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려 합니다. 콩쿠르가 시작되기 전부터 매우 열심히 연습을 하며 완변학 준비를 하죠. 그런 과정들이 높은 수준으로 음악을 향상시키도록,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마리야 킴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열흘이 넘는 시간을 보냈지만, 약간의 긴장감을 제외하고는 콩쿠르 내내 즐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준결선에서 바흐/부조니 <샤콘느>, 베토벤<소나타 26번, Op.81>, 최우정, 라흐마니노프<악흥의 순간 5번, Op.16>, <소나타 2번, Op.18>을 멋지게 마무리하며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고려인 3세인 마리야 킴에게 이번 콩쿠르 우승은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을 듯하다. "한국인이었던 할아버지는 내가 9세가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멀리 떨어져 살아서 자주 볼 기회가 없었는데,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게 6세 때였어요. 항상 기쁜 마음으로 한국을 방문할 것이고,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연주회도 열 계획입니다.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알렉세이 고를라치

명료하고 깔끔한 음색과 큰 폭의 표현력이 돋보였던 알렉세이 고를라치는 준결선에서 베토벤<소나타 28번, Op.101>, 임지선, 쇼팽 <연습곡, Op.10>을 선보이며 거침없이 결선 무대에 다다랐다. "관객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지루하지 않고 고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다른 음악적 특징을 가진 작품들을 선택했어요. 시간제한이 있었지만, 너무 길지 않은 여러 작품들을 고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힘과 낭만이 적절히 조율되고 구조적으로 안정감이 잡혀 있던 베토벤<협주곡 5번, Op.73>은 결선무대에서 그의 장점을 드러내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매우 섬세하게 신중을 기해 작곡되었기 때문에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교감을 해야 합니다. 두 파트가 모두 의욕적이며, 피아니스트는 오케스트라 뒤에 숨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연주할 때 어렵기도 해요. 고전적이면서 파워풀하지만, 낭만적인 사운드도 갖고 있습니다.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죠."
고를라치는 이제 갓 하노버 국립 음대에 입학해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은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많은 나라를 돌아보며 음악을 공부하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는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날을 꿈꿔봅니다. 이번 콩쿠르에서 많은 관객들이 나의 연주를 좋게 평가해서 놀라고 기뻤어요. 콩쿠르에서 상을 받는 것도 좋지만, 결국 모든 피아니스트는 관객을 위해 연주하고 관객들의 사랑을 받잖아요. 아티스트에게 관객들의 지지는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김태형

지난 2월에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하는 시기에, 한국에서 준비하는 마지막 콩쿠르였어요. 그래서 특히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했죠. 서울에서 개최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연습도 집에서 할 수 있고, 사치나 도시의 지리 등에 따로 적응할 필요가 없어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부담을 덜 수 있었어요."
세계의 여러 콩쿠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왔던 김태형은 올해 3월 인터라켄 클래식 인터내셔널 컴피티션, 인터네셔널 뮈지크 마로크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두 콩쿠르는 이번 콩쿠르의 레퍼토리를 미리 대중 앞에서 한 번이라도 더 연주해보자는 의도에서 참가했다고 한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를 겨냥한 일종의 워밍업이었다. "이번 콩쿠르의 레퍼토리는 내가 주로 연주하는 곡과 새로 배우는 곡으로 절반씩 구성했어요. 콩쿠르에서는 가능한 한 다양한 성격의 곡들을 구성하려 노력하는데, 준결선에서 짧은 베토벤 소나타를 고르고, 그만큼 얻을 수 있는 제한 시간에 다양한 곡들을 구성해 보았습니다."
콩쿠르가 끝난 직후에도 그는 상하이와 파리, 세종체임버홀(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박창수의 하우스 콘서트들에서 연주를 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7월에는 포르투갈에서 연주를 할 예정이며, 7월 이후의 일정은 유학 준비로 인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주위 분들과 친구, 선후배들이 옆에서 든든하게 응원해주고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 응원을 통해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대에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치고 있을 때 주변의 격려와 용기가 내게 무한한 힘을 주고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임효선

"음악은 항상 윈-윈 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comeptition'이라는 단어가 경쟁에서 파생되었지만 음악을 하는 목적은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에 있기 때문에, 서로 돕고 배우며 각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이기려는 마음보다 많이 배우고 나 자신을 이기자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노력해요."
임효선이 세운 이번 콩쿠르의 콘셉트는 '낭만 음악을 섭렵하자'였다. "대부분 다른 콩쿠르에서는 고전과 낭만 이후를 50대 50으로 분배했어요. 고전 음악에 더욱 애착과 자신감이 있어서였죠. 이번에는 내가 지금까지 배워온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계 발전된 낭만 음악을 연주해 보고 싶었어요. 항상 쇼팽과 슈만을 연주할 때 어딘지 모르게 백 퍼센트 이해가 안 가는 것 같고 불안했는데, 슈만과 쇼팽의 음악에서도 전에는 알지 못했던 수많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협주곡 3번>을 연주할 때 약간의 부상이 있었지만, 낭만과 러시아 음악을 석권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질 수 있었죠."
이번 콩쿠르 수상자 중에는 하노버 국립 음대 출신이 많았다. 커티스 음악원 졸업 후 독일로 옮기는데 심각한 고려와 결정이 필요했었다고 말하는 임효선은 지금 그때의 결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배움에는 끝이 없기에 학생 신분이 끝나더라도 배우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최악의 경우 1차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본선까지 준비해 온 곡들을 모두 관중 앞에서 연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행운인 것 같습니다. 호텔에 책을 1차 예선곡부터 본선곡까지 차례대로 세워놓았는데, 책들이 한 권씩 사라질 때의 뿌듯함과 안도감,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인 참가자로서 한국 음악인의 위상을 조금이라도 높였다면 기쁘고요. 피아니스트 임효선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고, 내 음악을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글_류현정 / 사진_서울국제음악콩쿠르

월간 INTERNATIONAL PIANO(Korea). 2008. 6월호
Sketch (Page 6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