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할아버지 고향서 세계진출 기회 얻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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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_concours2
작성일
2008-11-28 13:54
조회
208


■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우승 차지한 고려인 3세 마리야 김씨

“오늘 밤 제 꿈이 이뤄졌습니다. 꿈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동아일보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주최한 ‘LG와 함께하는 제4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피아노 부문)’가 27일 오후 7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막을 내렸다. 6명의 후보가 진출한 결선에서 우승은 우크라이나에서 온 고려인 3세 마리야 김(27·독일 하노버국립음대 재학) 씨가 차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로 이주했던 김 씨의 할아버지는 19년 전 우크라이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군인이셨던 할아버지는 제가 여덟 살 때 돌아가셨는데 한국에 대한 말씀은 거의 하지 않으셨어요. 아버지 말씀으로는 할아버지께는 한국이 슬픈 기억이었을 거래요. 하지만 제 몸속 피의 4분의 1은 분명 제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땅 한국에서 온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고향에 돌아와서 이런 영광을 얻다니…정말 뭐라 말해야 할지….”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10세 때부터 우크라이나 세바스토폴대 음대 교수인 어머니(타티아나 김 씨)의 본격적인 지도를 받았다.

“기술적인 부분과 감정 조율 등 제 모든 음악적 역량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거예요. 우크라이나인이었던 어머니는 결혼 후 아버지의 성을 따랐죠. 어머니나 저나 한국이 친숙할 수밖에요.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드렸어요. 딱 한 말씀 ‘엄청나구나!’ 하시고는 좋아서 막 비명을 지르시던데요.(웃음)”

15일 시작된 이번 콩쿠르에는 14개국 35명이 참가해 13일간 경쟁을 벌였다. 12명이 겨룬 준결선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김 씨는 26일 결선 첫날 두 번째로 무대에 올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를 연주하며 여유로우면서도 현란한 테크닉과 강한 카리스마로 시종 객석을 휘어잡았다.

우승자 김 씨에게는 5만 달러(약 4980만 원)의 상금과 함께 글로벌 레이블 ‘낙소스’에서 음반을 녹음해 세계 65개국 시장에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는 “작은 회사에서 한 번 음반을 내본 적은 있지만 낙소스처럼 세계적인 레이블과 함께 작업하게 되다니 흥분된다”며 “세계 시장에 데뷔하는 일생일대의 음반인 만큼 어떤 곡을 녹음할지 음반사와 신중하게 논의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2위 입상자 알렉세이 고를라치(20) 씨도 우크라이나인으로 김 씨와 같은 하노버국립음대에서 공부하고 있다. 고를라치 씨는 27일 두 번째로 무대에 올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장조 ‘황제’를 연주하면서 앳된 외모와 대조적으로 격정적이고 원숙한 연주로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고를라치 씨는 “콩쿠르를 마무리하는 무대에 잘 어울리는 화려하고 웅장한 곡이라고 생각해 선곡했다”며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의 음악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연주했으므로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3위는 한국의 김태형(23·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씨. 4위는 임효선(27·독일 하노버국립음대 재학) 씨와 미국인 에릭 주버(23·미국 피바디음악원 재학) 씨가 공동으로 수상했다. 6위는 스페인의 마리아나 프레발스카이아(26·미국 예일대 음대 졸업) 씨가 차지했다.

주버 씨는 “다른 참가자들은 대부분 내일 한국을 떠난다고 들었지만 나는 하루 더 한국에 머물기로 했다”며 “한국의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봄의 따뜻함을 만끽해볼 작정”이라고 웃었다.

결선 이틀간 12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 가운데는 주말을 맞아 공연장을 찾은 가족과 음악을 공부하는 청소년이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대 진학을 준비 중인 문수진(19·여) 씨는 “인터넷을 통해 세계적인 콩쿠르 실황을 챙겨 본다”며 “훌륭한 연주자들이 경합하는 콩쿠르 현장을 직접 찾아와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동아일보 2008. 4. 2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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