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공연리뷰 국립오페라단 '라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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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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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여주인공의 죽음은 무대 위에 소복소복 내리던 눈처럼 고요하고 따뜻했다. 국립오페라단(단장 정은숙)이 올해부터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공연하기로 한 푸치니의 '라보엠' 셋째 날 공연(8일 낮 공연ㆍ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은 빛 바랜 사진첩 속의 젊은 날들처럼 관객들에게 아련한 그리움과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내용으로 볼 때는 젊은이들의 오페라지만 유난히 중장년층 관객들이 많은 것이 눈에 띄기도 했다. 젊고 가난한 파리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 '라보엠'은 특히 오페라 입문에 적합한 쉽고 재미있는 작품. 작가 로돌포와 자수공(刺繡工) 미미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예술가 친구들의 따뜻한 우정과 미미의 죽음이 무대 위에 소박하게 펼쳐진다.

연출을 맡은 울리세 산티키와 미술감독 임일진은 사실적이면서도 독창적인 무대공간을 선보였다. 1막과 4막의 배경인 로돌포의 다락방은 푸른색을 주조로 삼아 주인공들의 예술가적 감각과 젊음의 희망을 동시에 전달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거리 풍경을 보여주는 2막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관객을 매혹했다. 좌우로는 크리스마스 장터가 펼쳐지고 무대 뒤편 중앙에는 불빛이 화려한 카페 모뮈스가 서 있다. 그리고 카페 옥외 좌석에서 무제타와 마르첼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제 2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거리 인파로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산만해지기 쉬운 이 장면을 이번 공연에서는 자연스럽고도 깔끔하게 정리해 관객이 시선을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3막의 공간 분할 역시 매우 효과적이었다. 파리 시의 입구인 앙페르 관문은 무대 2층, 마르첼로가 일하는 카페는 아래층에 배치하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계단을 설치해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확장했다. 무대에 쌓인 눈이나 내리는 눈 모두가 현실감을 더해줬다.

배역을 맡은 가수들 역시 현실 속의 인물들 같은 생동감을 보였다. 로돌포 역의 테너 정능화는 명징한 미성과 매끄러운 레가토, 마음을 두드리는 호소력 있는 음색으로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과장이 없는 그의 깨끗하고 자연스러운 발성은 앞으로 그가 맡을 새로운 배역들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미미 역의 소프라노 김세아는 고음이 완벽하게 나오지 않아 1막의 '내 이름은 미미'를 그리 인상적으로 부르지는 못했지만, 3막과 4막에서는 따뜻한 음색과 풍부한 표현력으로 극의 감동을 이끌어냈다. 특히 뛰어난 조화를 이루는 정능화와 김세아의 음색은 이들의 2중창을 더욱 빛나게 했다.

소프라노 김현심은 관능적이면서도 다소 코믹한 연기를 해야 하는 무제타에 적역이었다. 금속성이 느껴지는 맑고 차가운 음색의 고음은 무제타의 개성을 적절하게 표현했고, 연기력도 일품이었다. 무제타의 연인인 화가 마르첼로 역의 바리톤 이응광은 첫 소절을 노래하자마자 곧장 귀를 집중하게 하는 명쾌한 음색과 유연한 가창력을 지녔고, 연기 역시 뛰어났다.

이번 공연의 또 한가지 장점은 콜리네 역의 베이스 김진추와 쇼나르 역의 바리톤 왕광열을 포함한 네 보헤미안 젊은이들의 탁월한 연기 호흡이었다. 1막에서 집주인 베누아(베이스 이연성)를 골려먹는 장면, 4막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장난을 치는 장면 등 자칫 어설퍼질 수 있는 '위험한' 장면에서 네 사람의 빼어난 가창과 익살스런 연기는 관객을 몰입시켰고 즐겁게 해 줬다.

조명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조명디자인 고희선). 1막 방안의 어둠과 대조를 이룬 2막의 찬란함, 그리고 미미가 죽는 4막 장면의 따뜻하면서도 처연한 느낌을 주는 조명은 극 전체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관객의 감응을 이끌어냈다.

지난 해 이탈리아의 푸치니 페스티벌에서 '라보엠'을 지휘한 줄리안 코바체프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끌어 푸치니의 감성을 극적으로 풀어냈다. 공연이 끝난 후 다수의 관객은 때로 무대를 잊고 코바체프의 열정적이고 섬세한 지휘 모습에 빠져들었노라고 털어놓았다.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무대 위의 성악가들 모두가 공연시간 내내 지휘자와 치밀하게 교감하고 있었다.

"3개 팀이 총 9회 공연을 갖기 때문에 리허설을 연속으로 해야 했습니다. 2막의 경우에는 악기군도 다채롭고 어린이 합창단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맞춰내기가 쉽지 않죠. 사실 세 팀의 개성이나 수준에는 차이가 있는데, 오늘 공연한 팀은 상당히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특히 로돌포 역의 정능화씨는 모든 출연자 가운데 가장 탁월하고 발전 가능성이 큰 성악가라고 생각합니다." 공연 후 오페라극장 로비에서 만난 지휘자 코바체프는 그렇게 귀띔했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젊은 날을 회상하게 하는 한 편의 시였다", "무대가 너무나 조화롭고 아름답다", "젊은 가수들의 생생한 연기 덕분에 무대에 몰입했다" 등의 소감을 밝혔다.

공연은 14일까지 계속된다(10일 공연 없음).

이용숙 객원기자 rosina@chol.com

연합뉴스 2007. 12.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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